명칭 | 산해관 풍경구(산하이관 징취) Shanhaiguan Scenic Area 山海关景区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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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재지 | |
개요
만리장성의 동쪽 시작점이자 바다와 만나는 독특한 경관을 직접 보고자 하는 역사 애호가 및 일반 관광객들이 주로 찾는다. 특히 중국 역사의 중요한 순간들과 깊이 연관된 장소로서, 그 역사적 의미를 탐구하려는 이들에게 의미 있는 방문지가 된다.
'천하제일관'의 웅장함을 직접 체험하고 성벽을 따라 걸으며 과거의 전략적 중요성을 되새길 수 있으며, 노룡두에서는 만리장성이 바다로 이어지는 장관을 조망할 수 있다. 잘 보존된 성곽과 건축물들을 통해 명나라 시대의 군사 건축 기술을 엿볼 수 있다.
현재 모습은 1980년대에 대규모로 복원되거나 재건된 부분이 많으며, 인근에 재현된 일부 구시가지 구역은 인적이 드물어 다소 활기가 부족하다는 의견이 있다.
핵심 평가
🏷️여행지 특성
주요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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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제일관 (天下第一關)
입장료 ¥60부터산해관의 핵심 건축물로, '천하제일관'이라는 거대한 현판으로 유명하다. 웅장한 성문과 성벽을 통해 만리장성의 위용을 느낄 수 있으며, 과거 주요 군사 요충지로서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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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룡두 (老龙头)
입장료 ¥60만리장성의 동쪽 끝이 발해만과 만나는 지점으로, 용의 머리가 바다로 향하는 듯한 형상 때문에 '노룡두'라는 이름이 붙었다. 바다 위로 뻗은 장성의 독특한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대표적인 명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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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해관 성곽 및 요새
각 구역별 입장료 포함 가능둘레 약 4km, 높이 14m, 두께 7m의 견고한 성벽으로 둘러싸인 요새 도시이다. 성벽을 따라 걸으며 과거 방어 시설의 규모와 구조를 살펴볼 수 있으며, 일부 복원되지 않은 구간도 존재한다.
추천 포토 스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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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룡두 해상 장성
만리장성이 발해만 바다와 만나는 지점으로, 용머리 형상의 장성과 푸른 바다를 함께 담을 수 있는 독특한 풍경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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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제일관 현판 앞
웅장한 진동문(鎭東門) 성루 아래 걸린 '천하제일관' 거대 현판은 산해관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촬영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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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해관 성벽 위
잘 보존된 성벽 위를 걸으며 산해관의 전경과 멀리 보이는 연산산맥, 또는 발해 바다를 배경으로 사진을 남길 수 있다.
방문 팁
노룡두 유료 구역 외부에서도 만리장성이 바다와 만나는 모습을 일부 조망할 수 있다. 썰물 때에는 특정 경로로 유료 구역 접근이 가능하다는 정보도 있다.
친황다오 기차역 주변 택시 기사들은 미터기를 사용하지 않고 과도한 요금을 요구하는 경우가 있으므로 탑승 전 요금 확인이 필수적이다.
시내버스는 저렴하지만 항상 몹시 붐비는 편이며, 소지품 관리에 각별히 유의해야 한다.
비수기에는 방문객이 적어 비교적 한적하게 관람할 수 있다.
접근 방법
🚂 기차 이용
- 베이징, 톈진 등 주요 도시에서 친황다오역 또는 산해관역(山海关站)까지 고속열차(D계열) 또는 일반열차(T, K계열) 운행.
- 산해관역이 관광지와 더 가깝다. 베이징에서 산해관역까지 고속열차로 약 2~3시간 소요.
산해관역에서 관광지까지 택시 또는 시내버스 이용.
🚌 버스 이용
- 친황다오 시내 또는 인근 지역에서 산해관 방면 시내버스 또는 장거리 버스 이용 가능.
- 관광지 내 주요 지점(노룡두 등)으로 향하는 시내버스 노선(예: 25번)이 있다.
🚕 택시 이용
- 친황다오 시내 또는 기차역에서 택시로 이동 가능.
- 노룡두까지 기차역에서 약 10위안 내외 소요될 수 있으나, 미터기 사용 여부 및 요금 흥정이 필요할 수 있다.
역사적 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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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 명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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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담
산해관이라는 이름은 산과 바다 사이에 위치한 지리적 특성에서 유래되었다.
'천하제일관(天下第一關)'이라는 별칭으로 더 유명하며, 이는 만리장성의 동쪽 첫 번째 관문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만리장성이 바다와 만나는 지점인 노룡두(老龍頭)는 용의 머리가 바다로 향하는 모습과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청나라 시대에는 베이징과 선양 사이에 위치하여 '수도의 열쇠'로 불릴 만큼 전략적으로 중요한 곳이었다.
과거 몽골 칸의 입장에서 중국을 공격한다면 반드시 이곳을 정찰했을 것이라는 전략적 분석이 있다.
현재의 모습은 1980년대에 대규모로 복원되거나 재건된 부분이 많으며, 인근에 재현된 일부 구시가지 구역은 유령 도시처럼 느껴진다는 평가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