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묘복산 사타케 절(묘후쿠잔 사타케지)
명칭묘복산 사타케 절(묘후쿠잔 사타케지)
Satake-ji Temple
妙福山 佐竹寺
🗺️ 소재지

개요

묘복산 사타케 절은 국가 중요문화재인 역사 깊은 본당 건축을 감상하거나 반도 33관음 영지 순례의 일환으로 방문하려는 역사 애호가 및 순례자들이 주로 찾는다.

방문객들은 독특한 초가지붕 양식의 본당(2025년 5월 기준 일부 보수 중으로 전체 외관 관람 제한)을 살펴보고, 사타케 가문과 관련된 역사를 접하며 고즈넉한 사찰 분위기 속에서 고슈인(참배 증명 인장)을 받을 수 있다.

다만, 경내 사진 촬영이 엄격히 금지되어 있으며 일부 방문객들은 주지스님의 응대가 다소 엄격하다고 느끼는 경우가 있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핵심 평가

2.8
종합 가치
🏛️
4.3
역사 문화적 가치
👁️
3.3
시각적 매력
🔍
3.8
독특성
📸
0.5
포토 스팟
🌍
2
인지도

🏷️여행지 특성

🏆국가보물
🏰역사 유적지
💰저예산 여행지
🏞️지역 명소
🏛️역사적 건물

주요 특징

초가지붕 본당 (茅葺き屋根の本堂)

초가지붕 본당 (茅葺き屋根の本堂)

경내 무료

1546년에 재건된 국가 중요문화재로, 무로마치 시대 후기의 건축 양식과 모모야마 시대의 화려한 장식(화두창 등)이 조화를 이룬다. 독특하고 웅장한 초가지붕이 인상적이나, 2025년 5월 현재 보수 공사로 인해 전체 외관 관람이 제한될 수 있다.

💡 팁: 본당 내부는 물론 경내 전체가 사진 촬영 금지 구역이다.
경내 중앙
고슈인(御朱印) 및 순례지

고슈인(御朱印) 및 순례지

유료 (통상 300~500엔)

반도 33관음 영지 중 제22번 성지로, 많은 순례자가 찾는 곳이다. 이곳에서 고슈인을 받을 수 있으며, 인근 마사카 성터(馬坂城跡)의 고조인(御城印)도 판매한다. 고슈인 접수처의 운영 시간과 점심시간을 미리 확인하는 것이 좋다.

납경소 (본당 옆 건물)
일부 후기에 따르면 점심시간(12:00-13:00)에는 접수가 어려울 수 있음
사타케 가문(佐竹氏) 유적

사타케 가문(佐竹氏) 유적

경내 무료

과거 이 지역을 통치했던 사타케 가문의 기도처였으며, 인왕문 등에서 사타케 가문의 문장(부채에 달 문양)을 찾아볼 수 있다. 가문의 역사와 함께 사찰의 흥망성쇠를 느껴볼 수 있는 장소이다.

경내 전반 (특히 인왕문)

방문 팁

경내에서는 사진 및 동영상 촬영이 엄격히 금지되어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이는 본당 내부뿐 아니라 경내 전체에 해당된다.

고슈인(御朱印)을 받고자 한다면 납경소 운영 시간, 특히 점심 휴식 시간(일부 후기에 따르면 12시~13시)을 피하는 것이 좋다. 주지스님이 다소 엄격하다는 평이 있으니 예의를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본당의 초가지붕은 보수 공사가 진행 중일 수 있다. 2025년 5월 현재 공사로 인해 본당 전체 외관을 보기 어려우나, 일부 건축적 특징(화두창 등)은 관찰 가능하다.

인근 마사카 성터(馬坂城跡)의 고조인(御城印, 성 방문 기념 인장)을 이곳 사타케 절에서 구입할 수 있다.

접근 방법

🚃 대중교통 이용 시

  • JR 스이군선(水郡線) 히타치오타역(常陸太田駅) 하차.
  • 역에서 도보 약 30~40분 소요.
  • 역에서 자전거 대여 시 약 15~20분 소요.

과거에는 버스 노선이 있었다는 언급이 있으나, 현재는 폐지되었을 가능성이 높으므로 택시나 자전거 이용을 고려하는 것이 좋다.

🚗 자가용 이용 시

  • 사찰 입구 인왕문(仁王門) 옆에 방문객용 무료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으나, 공간이 협소할 수 있다.

역사적 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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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5...2022-2025 (추정)

주변 명소

이 장소 주변에는 표시할 명소가 없습니다.

여담

본존인 11면 관음상은 북쪽을 향하고 있어 '기타무키 관음(北向観音)'이라는 별칭으로도 불린다고 한다.

이 사찰의 초가지붕 본당은 일본에서 세 번째로 큰 규모라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사타케(佐竹)라는 성씨는 초대 당주 마사요시가 이 절의 원래 위치에서 마디가 하나뿐인 대나무를 발견하고 길조로 여겨 성씨로 삼았다는 설화와 관련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한때 주지가 없어 황폐했던 시기도 있었으나, 현재는 반도 33관음 영지의 하나로 신앙의 명맥을 잇고 있다.

인왕문의 금강역사상은 동일본 대지진 이후 복원되었는데, 한때 플라스틱처럼 보이는 대리상으로 대체된 적이 있다는 언급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