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문 옛터(추몬아토)
명칭중문 옛터(추몬아토)
Goshogatani Kogoishi - Central Gate Ruins (Chumon-ato)
中門跡
🗺️ 소재지

개요

7세기경 축조된 고대 산성 유적인 고쇼가타니 고고이시의 핵심부인 중문 옛터는 역사 탐방과 자연 속 산책을 즐기는 이들이 주로 찾는다. 특히 고대 성곽 건축 기술이나 방어 시설에 관심 있는 탐방객 및 등산객에게 의미 있는 장소이다.

방문객들은 거대한 석벽으로 이루어진 중문의 웅장함을 직접 마주하며 사진을 남길 수 있고, 주변의 토성과 다른 문터들을 따라 조성된 탐방로를 걸으며 고대 산성의 규모를 짐작해 볼 수 있다. 또한, 산 정상부에서는 과거 망루로 추정되는 건물터와 함께 주변 경관을 조망하는 것도 가능하다.

일부 탐방 구간은 경사가 급하고 계단의 단차가 있어 체력 소모가 있을 수 있으며, 제3주차장으로 이어지는 도로는 폭이 좁고 시야 확보가 어려운 점이 있다.

핵심 평가

2.8
종합 가치
🏛️
4
역사 문화적 가치
👁️
3.3
시각적 매력
🔍
3.8
독특성
📸
3
포토 스팟
🌍
2.5
인지도

🏷️여행지 특성

🏆국가보물
🏰역사 유적지
💰저예산 여행지
🏞️지역 명소

주요 특징

중문(中門) 석벽 및 수문 관람

중문(中門) 석벽 및 수문 관람

무료

고쇼가타니 고고이시의 가장 큰 볼거리인 중문은 높이 7.5m, 길이 18m에 달하는 석벽과 2단 석축, 수문으로 구성되어 7세기 후반의 뛰어난 축조 기술을 보여준다. 석벽에는 배수구도 확인할 수 있다.

고쇼가타니 고고이시 유적지 내 중앙부
상시 개방
고대 산성 유적 탐방 (신롱석 산책)

고대 산성 유적 탐방 (신롱석 산책)

무료

둘레 약 3km에 달하는 고대 산성 유적으로, 석축과 토성, 여러 문터가 남아있다. 잘 정비된 탐방로를 따라 걸으며 7세기 방어 시설의 규모를 체감할 수 있다.

고쇼가타니 고고이시 유적지 전역
상시 개방
산 정상부 및 건물터 탐방

산 정상부 및 건물터 탐방

무료

산 정상(해발 247m)까지 오르면 게이코 천황과 관련된 것으로 전해지는 게이코 신사 및 과거 건물(망루 추정)의 초석 유적을 볼 수 있다. 이곳에서는 주변 지역을 조망할 수 있다.

고쇼가타케 산 정상 부근
상시 개방

추천 포토 스팟

중문(中門) 석벽 정면

중문(中門) 석벽 정면

높이 7.5미터의 거대한 석벽과 수문이 어우러진 중문의 모습을 정면에서 촬영할 수 있다. 유적지의 상징적인 장소이다.

중문 수문(水門) 근경

중문 수문(水門) 근경

정교하게 쌓아 올린 수문과 석축의 디테일을 가까이에서 담을 수 있다. 고대 토목 기술을 엿볼 수 있는 지점이다.

산 정상 조망 지점

산 정상 조망 지점

고쇼가타케산 정상 부근에서는 유적지와 주변 산세를 함께 사진에 담을 수 있다. 특히 맑은 날에는 더욱 좋은 풍경을 제공한다.

방문 팁

제3무료주차장에서 중문 옛터까지 도보 5분으로 비교적 가깝지만, 주차장까지의 진입로가 좁고 시야가 좋지 않으니 서행 운전이 필요하다.

탐방로는 잘 정비되어 있으나 급경사와 미끄러운 구간, 단차가 큰 계단이 있으므로 등산화나 트레킹화 착용을 권장한다.

중문과 서문까지는 비교적 탐방이 용이하나, 그 이상 오르는 코스는 산세가 험할 수 있으므로 체력 안배와 안전에 유의해야 한다.

접근 방법

🚗 자가용 이용

  • 헤이세이 지쿠호 철도 다가와선 도요쓰역에서 자동차로 약 10분 거리에 위치한다.
  • 무료 주차장(제3무료주차장 등)을 이용할 수 있다.

제3주차장에서 중문 옛터까지는 도보 약 5분 소요되나, 주차장까지의 진입로가 좁고 시야가 좋지 않아 운전 시 주의가 필요하다.

역사적 배경

5개의 역사적 사건이 있습니다. 클릭하여 펼치기

663...1998

주변 명소

이 장소 주변에는 표시할 명소가 없습니다.

여담

이 유적은 '일본서기'와 같은 주요 고대 역사 기록에서는 언급되지 않아, 고고학적 발굴을 통해 그 존재와 성격이 밝혀졌다고 알려져 있다.

현재 '고쇼가타니(御所ヶ谷)'라는 지명은, 먼 옛날 게이코 천황이 규슈 지역 정벌 당시 이곳에 임시 궁궐을 두었다는 전설에서 유래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일부 연구자들 사이에서는 성벽 토루의 구조 등을 근거로, 이곳이 단순한 방어 시설이 아니라 종교적 제사를 지내던 제단이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고 한다.

중앙문 서쪽 편에는 미완성으로 남은 약 300미터 길이의 토목 공사 흔적이 확인되는데, 이는 축조 과정에서 계획이 변경되었음을 시사하는 부분으로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