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명칭 | 백관음 메이지절(햐쿠칸논메이지데라) Hyaku Kannon Meiji Temple 百観音明治寺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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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재지 | |
개요
수많은 관음상을 통해 여러 영장을 한 번에 순례하는 듯한 특별한 종교적 경험을 원하거나, 도심 속에서 독특한 분위기의 사찰을 탐방하며 마음의 평화를 찾고 싶은 개인 여행객 및 불교 문화에 관심 있는 이들이 주로 찾는다.
경내에 늘어선 180여 체의 석조 관음상을 둘러보며 각기 다른 모습을 감상할 수 있고, 본당에서 참배하거나 매년 여름 열리는 헌등회에 참여하여 수천 개의 등불이 밝히는 환상적인 풍경을 경험할 수도 있다. 또한, 어주인(고슈인)을 받으며 순례의 의미를 더할 수 있다.
일부 방문객은 어주인(고슈인)을 받는 과정에서의 직원 응대나, 관음상 구역의 출입 조건 및 사진 촬영 규칙에 대한 안내가 다소 명확하지 않았다는 아쉬움을 언급하기도 한다.
핵심 평가
🏷️여행지 특성
주요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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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팔십여 관음상 순례
180여 체가 넘는 다양한 모습의 석조 관음상이 봉안되어 있어, 마치 서국, 반도, 치치부의 100개 관음 영장을 한 곳에서 순례하는 듯한 경험을 할 수 있다. 각 관음상마다 고유한 표정과 자세를 관찰하는 것도 특별한 체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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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등회 (献灯会)
등불 헌납 시 약 500엔매년 7월 마지막 주 일요일경에 열리는 헌등회는 약 1,000개의 등불이 경내를 밝히는 장관을 연출하는 대표적인 행사이다. 이때 모인 수익금은 유니세프나 재해복구 지원 NPO 등에 전액 기부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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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주인(고슈인) 수집
500엔참배의 증표로 어주인(御朱印)을 받을 수 있다. 미리 정성스럽게 작성된 형태(카키오키, 書き置き)로 제공되며, 여행의 소중한 기념품이 될 수 있다.
추천 포토 스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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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등회 야경
수천 개의 등불이 켜진 헌등회 기간의 야경은 사진으로 남기기 좋은 매우 특별하고 환상적인 풍경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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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당 주변
사찰의 중심 건물인 본당의 건축미와 함께 주변의 고즈넉한 분위기를 사진에 담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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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관음 공원
사찰에 인접한 공원으로, 특히 과거 사찰의 종루 받침대로 만들어진 독특한 미끄럼틀은 재미있는 사진 촬영 소재가 될 수 있다.
방문 팁
관음상이 모셔진 구역은 본당에서 참배한 후, 울타리 문을 열고 들어가 관람할 수 있다는 안내가 있다. 단, 이 구역 내에서의 사진 촬영은 금지되어 있다.
어주인(고슈인)은 미리 정성껏 써둔 형태(카키오키)로 제공되며, 가격은 500엔이다.
어주인을 받기 전, 본당에서 독경하거나 사경을 납경하는 것이 좋다는 안내문이 있었다는 경험담이 있다.
경내에는 손으로 돌리면서 반야심경을 여러 번 읽은 것과 같은 공덕을 쌓을 수 있다고 알려진 수동 사경 도구가 설치되어 있다.
사찰에 인접한 백관음 공원의 독특한 미끄럼틀은 원래 사찰의 종루 받침대를 재활용한 것이다. 아이와 함께 방문한다면 특별한 놀이기구가 될 수 있다.
백관음 공원에는 화장실이 없으므로, 방문 시 유의하는 것이 좋다.
접근 방법
🚇 전철 이용 시
- 세이부 신주쿠선(西武新宿線) 누마부쿠로역(沼袋駅)에서 하차 후 도보 약 5분 거리에 위치한다.
역에서 사찰까지는 주택가를 통과하는 비교적 찾기 쉬운 경로이다.
축제 및 이벤트
헌등회 (献灯会)
역사적 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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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 명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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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담
백관음 메이지절의 정식 명칭은 '신부타락산 세존원 명치사(新浮佗落山世尊院明治寺)'라고 한다.
가수 사다 마사시가 이곳의 헌등회에 자주 참석하거나, 과거 경내에서 라이브 공연을 한 적이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경내 북서쪽 한편에는 '타마이 이나리 대명신(玉井稲荷大明神)'이라는 작은 신사가 모셔져 있다.
본당 근처 대향로 옆에는 무로마치 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아미타삼존종자판비가 세워져 있는데, 사찰 건립 시기보다 훨씬 오래된 유물이라 그 유래가 흥미롭다.
사찰에 인접한 '백관음 공원'은 원래 메이지절의 경내였던 부지를 나카노 구에 대여한 것이며, 공원 내 미끄럼틀의 돌로 된 토대는 원래 사찰의 종루 받침대였다고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