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명칭 | 도젠지 (東禅寺) Tōzen-ji 東禅寺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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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재지 | |
개요
막부 말기 영일 외교사의 중요한 무대였던 이곳의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거나, 도심 속 사찰 특유의 고요하고 평화로운 분위기 속에서 사색의 시간을 갖고자 하는 역사 애호가 및 개인 여행객들이 주로 찾는다.
방문객들은 경내에 자리한 아름다운 삼중탑을 감상할 수 있으며, 과거 영국 공사관으로 사용되었던 시기의 역사적 배경을 살펴볼 수 있다. 또한 잘 관리된 녹음과 석조 길이 어우러진 참배로를 따라 산책하며 도심의 번잡함에서 벗어나 평온함을 경험할 수 있다.
본당 내부나 과거 영국 공사관 숙소로 사용된 센겐테이(僊源亭) 및 그 정원 등 일부 주요 구역이 일반에 공개되지 않아 아쉬움을 느낄 수 있다는 언급이 있으며, 고슈인(御朱印)은 제공하지 않는 점을 방문 전 참고하는 것이 좋다.
핵심 평가
🏷️여행지 특성
주요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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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적인 삼중탑 관람
시나가와 지역에서는 보기 드문 웅장하고 기품 있는 삼중탑이 경내에 자리하고 있어 많은 방문객의 눈길을 끈다. 사찰의 주요 건축물 중 하나로, 고요한 경내 분위기와 어우러져 깊은 인상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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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최초 영국 공사관 터 탐방
도젠지는 막부 말기인 1859년 일본 최초의 영국 공사관이 설치되었던 역사적인 장소이다. 두 차례의 외국인 습격 사건(도젠지 사건)이 발생했던 곳으로, 일본 근대 외교사의 중요한 현장을 직접 살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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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하고 아름다운 경내 산책
도심 속에 위치함에도 불구하고 녹음이 우거지고 평화로운 분위기를 자랑한다. 특히 입구의 문을 지나 본당으로 향하는 돌계단과 주변의 푸른 초목이 어우러진 참배길은 방문객에게 깊은 인상을 주며, 조용히 사색하며 걷기에 좋다.
추천 포토 스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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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중탑 주변
경내의 상징적인 건축물인 삼중탑은 다양한 각도에서 아름다운 모습을 담을 수 있다. 특히 주변의 나무들과 함께 프레임에 담으면 계절감을 살린 사진을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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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구 참배로
산문을 지나 본당으로 이어지는 석조 길과 양옆의 푸르른 초목은 고즈넉하고 아름다운 풍경을 자아낸다. 특히 햇살이 비치는 시간에 방문하면 더욱 인상적인 사진을 남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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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당 앞
역사적인 분위기를 간직한 본당 건물 자체도 좋은 피사체이다. 전체적인 사찰의 분위기를 담거나, 건물의 디테일을 클로즈업하여 촬영하는 것도 좋다.
방문 팁
통상적으로 오후 4시에 문을 닫으므로 방문 시간을 미리 계획하는 것이 좋다.
고슈인(御朱印)은 제공하지 않으므로 참고해야 한다.
본당 내부나 센겐테이 정원 등 일부 구역은 일반 방문객에게 공개되지 않을 수 있다.
입구가 다소 찾기 어렵고 막다른 골목에 위치해 있다는 의견이 있으므로, 방문 전 지도를 통해 정확한 위치를 확인하는 것이 좋다.
조용하고 엄숙한 분위기의 사찰이므로, 방문 시 예의를 지키고 다른 참배객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접근 방법
🚇 지하철 및 도보
- 가장 가까운 역으로는 센가쿠지역(泉岳寺駅) 또는 다카나와 게이트웨이역(高輪ゲートウェイ駅)이 언급되며, JR 시나가와역(品川駅)에서도 도보로 접근 가능하다는 정보가 있다.
- 다만, 사찰이 주택가 안쪽, 골목길 끝에 위치하고 있어 초행길에는 다소 찾기 어려울 수 있으며, 안내 표시가 부족하다는 의견도 있다.
역사적 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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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 명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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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담
도젠지는 원래 아카사카에 창건되었으나 1636년 현재의 다카나와로 이전되었으며, 당시에는 사찰 바로 앞이 에도 만이어서 '바다 위의 선종 사찰'이라는 의미의 '해상선림(海上禅林)'이라는 별칭으로 불렸다고 한다.
막부 말기 영국 공사관으로 지정되면서 기존의 단가(檀家)였던 여러 다이묘 가문들이 떠나 사세가 위축되는 불운을 겪기도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제1차 도젠지 사건 당시 영국 공사관을 습격했던 로닌들의 칼자국과 총탄 흔적이 현재도 본당 현관 기둥에 남아있다는 언급이 있다.
초대 영국 공사였던 러더퍼드 올콕은 그의 저서 'The Capital of the Tycoon (1863)'에 도젠지에 대한 인상을 기록으로 남겼다.
제2차 도젠지 사건을 일으킨 이토 군베이는 자신의 번이 외국인 경호에 드는 비용과 동포를 해칠 가능성에 대한 우려로 공사 암살을 결심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