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시무레가와 유적
명칭하시무레가와 유적
Ibusuki Bridge Muregawa Remains
橋牟礼川遺跡
🗺️ 소재지

개요

과거 시대의 생활상과 일본 고고학사적으로 중요한 발견이 이루어진 장소에 관심 있는 역사 애호가나 학습 목적의 탐방객, 자녀와 함께 교육적인 시간을 보내고 싶은 가족 단위 방문객들이 주로 찾는다.

이곳에서는 복원된 고대 주거 형태를 관찰할 수 있고, 화산 활동으로 형성된 독특한 지층 단면을 직접 보며 역사적 시간의 흐름을 체감할 수 있다. 또한, 인접한 고고학 박물관을 통해 유물과 함께 더욱 깊이 있는 학습 경험을 할 수 있다.

다만, 유적의 이름 '하시무레가와'가 다소 생소하고 발음하기 어렵다는 언급이 있으며, 공원처럼 정비되어 있지만 기대보다 유적 자체의 요소가 많지 않아 아쉽다는 평가도 있다.

핵심 평가

3.3
종합 가치
🏛️
4.3
역사 문화적 가치
👁️
3
시각적 매력
🔍
3.8
독특성
📸
2
포토 스팟
🌍
2.3
인지도

🏷️여행지 특성

🏰역사 유적지
👨‍👩‍👧‍👦가족 친화적
🧒아이 친화적
💰저예산 여행지
🏞️지역 명소
👨‍👩‍👧가족 여행
🚶솔로 트래블러

주요 특징

이미지가 없습니다

복원된 수혈 주거 관찰

고대 하야토족이 거주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수혈 주거가 복원되어 있어 당시 생활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주거 옆에는 설명판이 설치되어 이해를 돕는다.

💡 팁: 인접한 이부스키시 고고학 박물관 '지유칸 코코 하시무레'를 먼저 방문하여 관련 지식을 쌓은 후 보면 더욱 흥미롭게 관찰할 수 있다.
유적 공원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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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층 단면 및 조개무덤 관찰

화산재층을 포함한 여러 시대의 지층 단면과 깊게 형성된 조개무덤(패총)을 직접 관찰할 수 있다. 일부 구역에는 자동 음성 안내도 제공되어 학습 효과를 높인다.

유적 공원 내 지정 관람 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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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교육 공원으로서의 활용

유적 전체가 공원처럼 조성되어 있어 역사를 배우며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이다. 넓은 광장과 나무 그늘이 있어 날씨 좋은 날에는 가족 단위 방문객들이 즐겨 찾는다.

유적 공원 전역

추천 포토 스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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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원된 수혈 주거

고대인들의 생활 공간이었던 수혈 주거를 배경으로 독특한 기념사진을 남길 수 있다. 다양한 각도에서 촬영해 보는 것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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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층 단면 전시장

여러 시대의 토층이 겹겹이 쌓인 지층 단면은 유적의 역사적 중요성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좋은 피사체이다. 학술적 가치를 담은 사진을 촬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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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 공원 전경

잘 정비된 유적 공원의 전체적인 모습과 함께 멀리 보이는 가이몬다케(開聞岳)를 함께 담으면 더욱 의미 있는 풍경 사진을 얻을 수 있다.

방문 팁

방문 전 인접한 이부스키시 고고학 박물관 '지유칸 코코 하시무레(時遊館COCCOはしむれ)'를 먼저 관람하면 유적의 역사와 가치를 이해하는 데 더욱 도움이 된다.

유적지 입구가 다소 좁고 찾기 어려울 수 있으므로, 사전에 위치를 확인하면 방문이 용이하다.

날씨가 좋은 날에는 공원처럼 조성된 유적 내에서 도시락을 펴고 피크닉을 즐기기에도 적합하다.

유적 내부는 평탄해 보이지만 일부 고저차가 있는 구간이 있으므로 이동 시 발밑을 주의하는 것이 좋다.

접근 방법

🚗 자가용 이용 시

  • 가고시마현 이부스키시 주니초 2316-2 주소로 검색하여 방문할 수 있다.
  • 인접한 이부스키시 고고학 박물관 '지유칸 코코 하시무레' 주차장 이용 가능 여부는 현장 확인이 필요하다.

🏞️ 도보 접근 시

  • 이부스키시 고고학 박물관 '지유칸 코코 하시무레' 맞은편에 위치하고 있어 박물관 관람 후 함께 둘러보기 용이하다.
  • 유적지 입구가 좁고 찾기 어려울 수 있다는 방문객의 언급이 있으므로 표지판을 잘 확인하는 것이 좋다.

역사적 배경

5개의 역사적 사건이 있습니다. 클릭하여 펼치기

1916년 (다이쇼 5년)...1996년 (헤이세이 8년)

주변 명소

이 장소 주변에는 표시할 명소가 없습니다.

여담

전쟁 이전에는 '이부스키 유적(指宿遺跡)'이라는 명칭으로 더 잘 알려져 있었다고 한다.

유적 발굴을 주도한 고고학자 하마다 코사쿠는 이곳의 화산 재해 흔적에 주목하여 '동양의 폼페이 혹은 산토리니'라고 칭했다는 기록이 있다.

최초 조사 당시 상층에서 발견된 토기는 야요이 토기로 인식되었으나, 후속 연구를 통해 고훈 시대 후기의 '나리카와식 토기'임이 밝혀졌다고 한다. 하지만 조몬 토기보다 후대의 것임은 변함없어 유적의 학술적 가치는 여전히 높게 평가된다.

유적의 이름인 '하시무레가와(橋牟礼川)'는 그 발음이 다소 어려워 처음 방문하는 이들이 종종 곤란을 겪는다는 언급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