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쿠이치가이 문 터 (쿠이치가이 미쓰케아토)
명칭쿠이치가이 문 터 (쿠이치가이 미쓰케아토)
Site of Kuichigai Mitsuke
喰違見附跡
🗺️ 소재지

개요

에도 시대 초기 성곽 구조의 독특함과 이와쿠라 토모미 암살 미수 사건 등 근대 역사에 관심 있는 탐방객이나, 도심 속에서 역사적 흔적과 함께 조용한 산책을 즐기려는 이들이 주로 찾는다.

돌담 대신 흙으로 쌓은 토루와 지그재그 형태로 조성된 길의 흔적을 통해 당시의 방어 전략을 엿볼 수 있으며, 설치된 안내판을 통해 이곳의 역사적 의미를 되새길 수 있다. 인접한 벤케이 해자 등을 조망하며 사색의 시간을 갖거나 주변 역사 명소와 연계하여 탐방할 수도 있다.

이곳은 복원된 성문이나 뚜렷한 건축 유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주로 토루의 흔적과 안내판으로 구성되어 있어, 역사적 배경지식이 부족하면 평범한 언덕이나 공원으로 느껴질 수 있다는 언급이 있다.

핵심 평가

2.8
종합 가치
🏛️
4
역사 문화적 가치
👁️
3
시각적 매력
🔍
3.8
독특성
📸
2.5
포토 스팟
🌍
2
인지도

🏷️여행지 특성

🏰역사 유적지
🏞️지역 명소
🚶솔로 트래블러

주요 특징

이미지가 없습니다

토루와 지그재그 길의 독특한 구조

에도 시대 초기의 독특한 성문 방어 시설인 흙으로 쌓은 토루(土塁)와 의도적으로 구불구불하게 만든 길의 형태가 잘 남아있다. 이를 통해 돌담으로 견고하게 만든 다른 미쓰케와는 다른 초기 에도성의 방어 전략을 살펴볼 수 있다.

💡 팁: 안내판을 함께 읽으며 당시의 모습을 상상해 보면 더욱 의미 있는 탐방이 된다.
喰違見附跡 전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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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사건의 현장, 쿠이치가이의 변

메이지 시대 초기 주요 정치인이었던 이와쿠라 토모미가 습격당한 암살 미수 사건인 '쿠이치가이의 변'(喰違の変)이 일어난 장소이다. 이 사건은 당시 일본 정치의 격변기를 상징하는 중요한 역사적 현장으로 남아있다.

喰違見附跡 내 안내판 부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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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 속 전망과 역사 산책

벤케이 해자, 과거 사나다 해자였던 조치대학교 운동장 등 에도성 외곽 해자의 일부를 조망할 수 있는 위치다. 호텔 뉴 오타니 등 현대적인 건물과 어우러진 독특한 풍경을 감상하며 조용히 산책을 즐기기에 좋다.

💡 팁: 날씨 좋은 날 방문하면 더욱 선명한 경치를 감상할 수 있으며, 특히 저녁 무렵에는 아름다운 야경을 볼 수 있다는 이야기가 있다.
喰違見附跡 주변, 특히 해자 조망 지점

추천 포토 스팟

포토 스팟 이미지가 필요합니다

喰違見附跡 안내판과 주변 토루

이곳의 역사적 의미를 담은 안내판과 함께 잘 보존된 토루의 모습을 배경으로 사진을 남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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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케이 해자 조망 지점

넓게 펼쳐진 벤케이 해자와 그 너머로 보이는 현대적인 도시 경관을 한 프레임에 담아 독특한 대비를 연출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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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뉴 오타니 방면에서 바라본 풍경

고지대의 이점을 살려 주변의 기오이초 일대와 멀리 아오야마 방면까지 넓게 트인 경치를 배경으로 인상적인 사진을 촬영할 수 있다.

방문 팁

여름철이나 저녁 시간대 방문 시 벌레에 대비하는 것이 좋다.

인근 기오이 홀, 호텔 뉴 오타니, 시미즈다니 공원 등과 함께 도보로 둘러보는 역사 산책 코스를 계획할 수 있다.

요츠야역에서 외곽 해자를 따라 조성된 산책로를 이용하면 벤케이 해자 등을 감상하며 쾌적하게 방문할 수 있다.

접근 방법

🚇 지하철 및 JR 이용

  • 도쿄 메트로 마루노우치선/난보쿠선 요츠야역 하차 후 도보 이동
  • JR 주오-소부선 요츠야역 하차 후 도보 이동

요츠야역에서 외곽 해자(소토보리)를 따라 조성된 산책로를 이용하면 벤케이 해자 방면으로 이동하며 도착할 수 있다. 호텔 뉴 오타니 또는 기오이 홀 맞은편에 위치한다.

역사적 배경

4개의 역사적 사건이 있습니다. 클릭하여 펼치기

1612년 (게이초 17년)...현대

주변 명소

이 장소 주변에는 표시할 명소가 없습니다.

여담

'쿠이치가이(喰違)'라는 이름은 길이 어긋나 있다는 뜻으로, 실제로 이곳의 길이 지그재그 형태로 되어 있는 것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이곳은 에도성의 다른 문(미쓰케)들과는 달리 돌담(石垣)이 아닌 흙으로 쌓은 토루(土塁)로 만들어진 간소한 형태의 문이었다고 전해진다.

에도성 외곽 해자 중 가장 높은 지형에 위치하여 초창기 에도 방어의 중요한 요충지로 여겨졌다.

남동쪽으로는 벤케이 해자가 현존하며, 북서쪽의 사나다 해자는 현재 매립되어 조치대학교의 운동장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얘기가 있다.

이곳에서 발생한 '쿠이치가이의 변' 이후, 약 4년 뒤에는 인근 기오이 언덕(紀尾井坂)에서 내무경 오쿠보 도시미치가 암살당하는 '기오이 사카의 변'이 일어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