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명칭 | 오키나와현 호국 신사(오키나와켄 고코쿠 진자) Okinawa Gokoku Shrine 沖縄縣護國神社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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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재지 | |
개요
오키나와 전쟁을 비롯한 역사적 사건의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평화를 기원하는 이들, 또는 현지 신사 문화를 경험하려는 역사/문화 탐방객과 일반 관광객들이 주로 찾는다.
이들은 경내에서 엄숙하게 참배하거나, 다양한 기념물과 조형물을 살펴보며 역사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다. 또한, 새해 등 특별한 시기에는 현지인들과 함께 축제 분위기를 느끼거나, 평소에는 고슈인(참배 기념 도장)을 받거나 오미쿠지(운세 뽑기)를 체험하며 일본 전통문화를 접할 수 있다.
핵심 평가
🏷️여행지 특성
주요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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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국 영령 추모 및 참배
무료전사한 군인, 군무원뿐 아니라 오키나와 전투에서 희생된 일반 주민과 어린이들의 영혼까지 모시고 있어 방문객들은 평화의 소중함을 되새기며 추모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 경내에는 관련 기념비와 조형물도 설치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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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 맞이 참배 및 계절 행사
무료 (노점 음식 등 별도)새해 첫 참배(하츠모데) 명소로 현지인들에게 인기가 높으며, 이 시기에는 참배길을 따라 다양한 노점이 늘어서 축제 분위기를 자아낸다. 봄과 가을에는 정기 대제, 여름에는 미타마 마츠리 등 계절별 주요 제례가 거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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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슈인 날인 및 기념품 구매
고슈인 약 300엔~, 오미쿠지 약 100엔~참배 기념으로 신사 직원이 직접 글씨를 써주는 고슈인(御朱印)을 받을 수 있으며, 다양한 종류의 부적(오마모리)과 운세를 점치는 오미쿠지도 구매 가능하다. 특히 귀여운 디자인의 에토(십이지신) 부적 등이 준비되어 있다.
추천 포토 스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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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이군인 부부상 및 특공 용사상
전쟁의 아픔과 희생을 기리는 경내의 조형물들 앞에서 역사를 되새기며 사진을 남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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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 본전 및 대형 도리이
잘 관리된 신사의 웅장한 본전 건물과 입구의 커다란 도리이는 신사의 상징적인 모습을 담을 수 있는 장소이다.
방문 팁
신사 방문 시 주차는 인근 오노야마 공원 주차장을 이용하며, 신사 사무소에서 주차권을 제시하면 무료로 이용 가능하다.
본전 우측 사무소(社務所)에서 참배 기념으로 직접 써주는 고슈인(御朱印)을 받을 수 있으며, 다양한 부적(오마모리)도 판매한다.
신년 기간(1월 1일~3일)에는 참배길 주변에 다양한 음식 노점이 들어서 활기찬 분위기를 경험할 수 있으나, 매우 혼잡하다.
오노야마 공원 내에 위치하여 공원 산책, 운동 시설 이용과 함께 방문하기 좋다. 인근에 오키노구 신사도 있어 함께 둘러볼 수 있다.
경내 및 공원 내에 무료로 이용 가능한 공중 화장실이 있다.
접근 방법
🚈 유이레일 (모노레일)
- 오노야마공원역 또는 쓰보가와역에서 하차 후 도보 약 5~10분 소요된다.
두 역 모두 신사까지의 거리가 비슷하며, 공원 산책을 겸해 이동할 수 있다.
🚗 자가용
- 오노야마 공원 내 주차장을 이용할 수 있다. 신사 방문객은 신사 사무소에서 주차권을 확인받으면 무료로 이용 가능하다.
공원 내에서는 서행 및 비상등 점멸 운전이 요구될 수 있다.
축제 및 이벤트
신년 특별 참배 (하츠모데)
춘계 예대제 (春季例大祭)
오키나와 전 전몰자 위령제 (沖縄全戦没者慰霊祭)
미타마 마츠리 (みたま祭り)
추계 예대제 (秋季例大祭)
역사적 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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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 명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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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담
이곳에는 오키나와 전투에서 희생된 군인들뿐만 아니라, 조난당한 학도병, 일반 주민 등 약 18만주(柱)에 달하는 민간인 희생자들의 영령도 함께 모셔져 있다고 알려져 있다.
과거 신사 부흥을 위한 기부자 명단에는 엔화와 함께 달러로 표기된 내역도 있어, 전후 오키나와의 독특한 역사적 배경을 엿볼 수 있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현재 신사 건물의 상당 부분이 콘크리트 구조로 되어 있는데, 이는 제2차 세계대전으로 소실된 후 재건되는 과정에서의 시대적 상황을 반영하는 것으로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