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루토시 카가와 토요히코 기념관 (나루토시 카가와 토요히코 키넨칸)
명칭나루토시 카가와 토요히코 기념관 (나루토시 카가와 토요히코 키넨칸)
Naruto City Kagawa Toyohiko Memorial Museum
鳴門市賀川豊彦記念館
🗺️ 소재지

개요

사회 운동가 가가와 도요히코의 생애와 사상에 대해 배우고 싶은 역사 및 사회학 연구자, 혹은 인근 독일관과 연계하여 나루토 지역의 근대사를 탐구하려는 이들이 주로 찾는다.

제1부터 제3까지 마련된 전시실을 통해 가가와 도요히코의 다양한 사회 활동, 저술, 국제 교류 등의 업적을 살펴볼 수 있으며, 그가 남긴 자필 원고나 유품 등 관련 자료를 접하며 그의 삶과 정신을 보다 깊이 이해할 수 있다. 때로 직원으로부터 방문객에 맞춘 세심한 안내나 설명을 들을 수도 있다.

가가와 도요히코에 대한 사전 지식이 부족할 경우 그의 다양한 업적이나 사상의 깊이를 온전히 이해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 있으며, 관내 사진 촬영이 전면 금지되어 있어 시각적인 기록을 남기고자 하는 방문객에게는 아쉬움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이 언급된다.

핵심 평가

2.5
종합 가치
🏛️
3.5
역사 문화적 가치
👁️
3
시각적 매력
🔍
4
독특성
📸
1
포토 스팟
🌍
1.5
인지도

🏷️여행지 특성

🏰역사 유적지
💰저예산 여행지
🏞️지역 명소
🎓학생 친화적
👨‍👩‍👧가족 여행
🧓노년층
🚶솔로 트래블러

주요 특징

가가와 도요히코의 생애와 업적 전시 관람

가가와 도요히코의 생애와 업적 전시 관람

제1~3전시실에서 사회 운동, 협동조합 운동, 평화 운동 등 가가와 도요히코의 다방면에 걸친 활동과 사상을 소개하는 풍부한 자료를 관람할 수 있다. 그의 자필 원고나 유품 등도 전시되어 이해를 돕는다.

💡 팁: 전시 관람 순서나 내용에 대해 궁금한 점이 있다면 직원에게 문의하면 친절한 설명을 들을 수 있다는 평가가 있다.
기념관 내부 제1~3전시실
09:30 - 16:30
후나모토 목사(船本牧舎)를 모델로 한 건축물 외관

후나모토 목사(船本牧舎)를 모델로 한 건축물 외관

기념관 건물은 1917년 반도 포로수용소 독일인의 설계로 지어진 후나모토 목사를 모델로 하여 지어졌다. 붉은 벽돌로 마감된 아름다운 외관이 특징적이다.

기념관 외부

추천 포토 스팟

기념관 외관

기념관 외관

후나모토 목사를 모델로 한 붉은 벽돌 건물의 아름다운 모습을 담을 수 있다.

방문 팁

인근의 나루토시 독일관과 함께 방문할 계획이라면 공통 입장권을 구매하는 것이 경제적이다.

방문객이 많지 않은 시간에는 직원이 관람객에 맞춰 영상 자료 상영 시간을 조정해 주는 등 세심한 배려를 받을 수 있다는 언급이 있다.

기념관 입구에는 방문객이 자유롭게 가져갈 수 있는 무료 어깨 안마봉이 비치되어 있다.

가가와 도요히코라는 인물에 대해 미리 간단히 알아보고 방문하면 전시 내용을 더욱 풍부하게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인근 '미치노에키 다이쿠노사토'와 '나루토시 독일관' 등 주변 관광 명소와 연계하여 방문 일정을 계획하기 용이하다.

접근 방법

🚶 도보

  • JR 반도(板東)역에서 약 20분 소요
  • 고속버스 나루토니시(鳴門西) 버스정류장(다카마츠 자동차도)에서 약 5분 소요

🚗 자가용

  • 다카마쓰 자동차도 이타노(板野) IC에서 약 5분 소요
  • 도쿠시마 자동차도 아이즈미(藍住) IC에서 약 10분 소요
  • 고베 아와지 나루토 자동차도 나루토(鳴門) IC에서 약 15분 소요

주차는 인접한 '미치노에키 다이쿠노사토' 또는 나루토시 독일관 주차장을 이용 (총 105대 주차 가능)

역사적 배경

4개의 역사적 사건이 있습니다. 클릭하여 펼치기

1996년 5월 25일...2002년 4월 1일

주변 명소

이 장소 주변에는 표시할 명소가 없습니다.

여담

기념관의 외관은 1917년 반도 포로수용소의 독일인 포로가 설계한 후나모토 목사(船本牧舎)를 모델로 하여 지어졌다고 전해진다.

가가와 도요히코는 고베 출생이지만 4세 때 부모를 잃고 아버지의 본가가 있는 도쿠시마현에서 유소년기를 보낸 인연이 있다.

그는 일본 국내보다 국제적으로 더 높은 명성을 얻었으며, 간디나 슈바이처와 비견되는 성인으로 불리기도 했다는 평가가 있다.

생전에 여러 차례 노벨 평화상 후보로 추천되었으며, 자전적 소설 '사선을 넘어서(死線を越えて)'는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하였다.

기념관 건립 당시 약 3천 명에 가까운 시민들의 기부금이 모여 민간 주도로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고 알려져 있다.

2층에는 스테인드글라스와 찬송가 악보가 놓인 피아노가 있어, 가가와 도요히코의 신앙과 관련된 기독교 모임 장소로도 활용되는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