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칭 | 알티트 요새 Altit Fort قلعہ التیت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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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재지 | |
개요
1100년의 역사를 간직한 고대 건축물과 훈자 계곡의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하고 싶은 역사 애호가 및 자연 풍경을 즐기는 여행자들이 주로 찾는다.
요새 내부의 오래된 방들과 목조 건축을 탐험할 수 있으며, 특히 시카리 타워에서는 주변 산과 강, 마을의 탁 트인 파노라마 전망을 감상할 수 있다. 아가 칸 문화 재단의 복원 과정을 통해 보존된 문화유산을 직접 확인할 수 있으며, 입장료에 포함된 가이드 투어를 통해 요새의 역사와 이야기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있다.
일부 방문객은 외국인 입장료가 현지 물가에 비해 다소 비싸다고 느끼는 경우가 있으며, 인근 발티트 요새에 비해 규모가 작다는 언급도 있다.
핵심 평가
🏷️여행지 특성
주요 특징

고대 건축물과 역사 탐방
입장료에 포함약 1100년 전 지어진 시카리 타워를 비롯한 고대 건축 양식을 직접 볼 수 있다. 낮은 문, 정교한 목조 조각, 왕족의 방, 감옥 등 다양한 공간을 통해 과거 훈자 왕국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훈자 계곡 파노라마 전망
입장료에 포함요새 정상, 특히 시카리 타워에서는 훈자 강과 주변 계곡, 라카포시, 레이디핑거와 같은 설산들이 어우러진 숨 막히는 파노라마 전망을 감상할 수 있다. 발티트 요새도 조망 가능하다.

로열 가든(Kha Basi) 및 전통 마을 산책
입장료에 포함 (정원)요새 아래에는 아름답게 가꿔진 로열 가든(Kha Basi)이 있어 평화로운 휴식을 취할 수 있다. 요새로 이어지는 길에는 전통적인 가옥과 기념품 상점들이 있는 작은 바자르가 형성되어 있어 현지 문화를 느끼며 산책하기 좋다.
추천 포토 스팟

요새 최상층 (시카리 타워)
훈자 계곡, 훈자 강, 라카포시를 비롯한 주변 설산들이 한눈에 들어오는 파노라마 전경을 담을 수 있다. 발티트 요새도 함께 촬영 가능하다.

로열 가든 (Kha Basi)
아름다운 정원을 배경으로 고풍스러운 알티트 요새의 모습을 함께 담을 수 있다. 특히 꽃 피는 계절에 다채로운 색감의 사진을 얻을 수 있다.

요새로 이어지는 길목 및 바자르
전통적인 훈자 마을의 가옥과 좁은 골목길, 현지인들의 모습, 다채로운 기념품 상점 등을 배경으로 독특한 분위기의 사진을 촬영할 수 있다.
방문 팁
입장료에는 가이드 비용이 포함되어 있어, 요새의 역사와 각 장소에 대한 설명을 들으며 관람할 수 있다.
요새 내부에 레스토랑(Kha Basi Café)이 있어 간단한 식사나 전통 음료를 즐길 수 있다.
요새 입구 근처에 유료 주차장(약 100 PKR)이 마련되어 있어 자가용 방문 시 주차가 편리하다.
살구꽃이나 벚꽃이 만개하는 봄 시즌(블라썸 시즌)에 방문하면 요새와 어우러진 더욱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는 언급이 있다.
알티트 요새는 발티트 요새보다 더 오래되었으며, 두 요새는 각기 다른 매력을 가지고 있어 함께 비교하며 방문하는 것도 좋다.
요새 내부의 문과 통로가 낮고 좁은 편이므로 이동 시 머리를 부딪히지 않도록 주의가 필요하다.
접근 방법
🚗 자가용/택시 이용
- 카리마바드 또는 알리아바드에서 차량으로 쉽게 접근 가능하다.
- 요새 입구 근처에 유료 주차장(약 100 PKR)이 마련되어 있다.
카라코람 하이웨이(KKH)에서도 멀지 않다.
🚶 도보
- 훈자 지역의 숙소에서 주변 경치를 감상하며 걸어서 방문할 수도 있다.
- 요새로 향하는 길은 마지막에 약간의 오르막이 있지만 대체로 걷기 쉬운 편이다.
역사적 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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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 명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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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담
알티트(Altit)라는 지명은 티베트어에서 유래하여 '이쪽 아래(this side down)'를 의미한다는 설이 있다.
요새 주변에 거주하는 브루쇼(Burusho)인들이 사용하는 브루샤스키어는 현존하는 어떤 언어와도 친족 관계가 밝혀지지 않은 고립어로 알려져 있다.
훈자 지역 주민들 사이에서는 자신들이 알렉산더 대왕의 군대와 함께 온 그리스 병사들의 후예라는 전설이 내려오지만, 유전학적 연구를 통해 이는 사실과 다른 것으로 밝혀진 바 있다.
과거 이 지역은 샤머니즘, 불교, 힌두교 등 다양한 종교의 영향을 받았으며, 15세기에 이슬람이 전파된 이후 19세기경 많은 주민들이 이스마일파로 개종한 것으로 전해진다.
요새 내부의 특정 기둥과 관련하여, 왕이 정치적 이유로 자신의 동생을 살해한 후 그 시신을 기둥 안에 숨겨 매장했다는 비극적인 이야기가 전해지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