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따께오 사원 (쁘라삿 따께오)
명칭따께오 사원 (쁘라삿 따께오)
Ta Keo (Prasat Ta Kêv)
ប្រាសាទតាកែវ
🗺️ 소재지

개요

가파른 계단을 오르는 도전과 크메르 건축의 웅장함을 경험하고 싶은 모험심 강한 여행객이나 고대 역사 및 건축 애호가들이 주로 찾는다.

사원의 가파른 계단을 직접 오르며 미완성된 독특한 건축 양식을 가까이에서 관찰할 수 있고, 정상에서는 주변 정글과 고대 유적지의 광활한 전경을 조망할 수 있다.

계단이 매우 가파르고 일부 구간은 복원 중이어서 오르내릴 때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또한 그늘이 부족하여 더위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며, 미완성 사원이기에 다른 앙코르 유적에 비해 정교한 조각 장식은 찾아보기 어렵다.

핵심 평가

3.8
종합 가치
🏛️
4.3
역사 문화적 가치
👁️
3.3
시각적 매력
🔍
4
독특성
📸
3
포토 스팟
🌍
3
인지도

🏷️여행지 특성

🏛️유네스코 세계유산
🏰역사 유적지
🏞️지역 명소

주요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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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으로 향하는 가파른 계단 등반

사원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정상까지 이어지는 매우 가파르고 높은 사암 계단이다. 등반은 다소 도전적일 수 있으나, 고대 크메르인들이 신에게 다가가고자 했던 경외심을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다.

💡 팁: 계단 폭이 좁고 경사가 심하므로, 오르고 내릴 때 발밑을 잘 살피고 천천히 이동하는 것이 안전하다.
사원 각 면의 중앙 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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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에서의 파노라마 전경 감상

힘든 계단을 올라 사원 정상에 도달하면, 사방으로 펼쳐진 앙코르 지역의 정글과 주변 유적지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특히 해 질 무렵에는 아름다운 일몰 풍경을 감상할 수도 있다.

사원 최상층 중앙탑 주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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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완성의 거대한 사암 건축미

따께오 사원은 크메르 제국에서 최초로 전체를 사암으로 건축하려 했던 사원으로, 조각 작업이 시작되자마자 중단되어 정교한 장식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대신 거대한 사암 블록 자체의 육중함과 건축 구조의 원형을 명확히 살펴볼 수 있는 독특한 매력이 있다.

사원 전체

추천 포토 스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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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원 정상 (중앙탑 주변)

가파른 계단을 오른 후 도달하는 사원 정상에서는 주변의 광활한 정글과 앙코르 유적지를 배경으로 한 파노라마 사진을 남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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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쪽 계단과 난디 상

사원의 주축인 동쪽 계단은 그 자체로 웅장한 피사체이며, 계단 아래에는 시바 신의 탈것인 난디 황소상이 있어 함께 촬영하기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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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원 전체를 담는 외부 조망 지점

사원에서 약간 떨어진 거리에서 5단으로 이루어진 피라미드 형태의 사원 전체 모습을 촬영하면 그 거대함과 독특한 구조를 강조할 수 있다.

방문 팁

계단이 매우 가파르고 단차가 크며, 일부 구간에는 안전 난간이 없으므로 편안하고 접지력 좋은 신발을 착용하고, 오르내릴 때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사원 내부에 그늘이 거의 없어 한낮에는 매우 뜨거우므로, 방문 시 충분한 물과 모자, 선크림 등을 반드시 준비하는 것이 좋다.

앙코르 유적군 내 다른 주요 사원들에 비해 방문객이 적은 편이어서, 비교적 한적하고 여유롭게 유적을 탐험할 수 있다.

정상 중앙탑 내부에서 세 개의 불상을 볼 수 있으며, 이곳에서 소원을 비는 방문객도 있다.

접근 방법

🚗 차량 및 툭툭 이용

  • 씨엠립 시내에서 툭툭, 택시 또는 개인 차량을 이용하여 앙코르 고고학 공원 내 따께오 사원으로 이동할 수 있다.
  • 일반적으로 앙코르 유적군 관광 코스에 포함하여 방문한다.

앙코르 고고학 공원 입장권이 필요하다.

역사적 배경

5개의 역사적 사건이 있습니다. 클릭하여 펼치기

968년...13세기까지

주변 명소

이 장소 주변에는 표시할 명소가 없습니다.

여담

따께오 사원은 고대 크메르 제국에서 최초로 전체를 사암으로만 건축하려 했던 사원으로 알려져 있다.

건설 당시 '헤마기리(Hemagiri)' 또는 '헤마스링가기리(Hemasringagiri)', 즉 '황금 봉우리의 산'으로 불렸다는 기록이 있다.

공사가 중단된 이유에 대해서는 건설 중 벼락을 맞아 불길한 징조로 여겨졌기 때문이라는 설과, 자야바르만 5세의 죽음으로 인한 왕위 계승 다툼 때문이라는 설 등이 전해진다.

미완성인 상태로 남아있어, 오히려 크메르 사원 건축 기법과 과정을 엿볼 수 있는 독특한 자료로 평가받기도 한다.

중화인민공화국의 지원을 받아 복원 작업이 이루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