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칭 | 산 베르나르도 수도원(콘벤토 산 베르나르도) Convento San Bernardo Convento San Bernard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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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재지 | |
개요
살타의 유서 깊은 식민지 시대 건축물과 종교적 유산을 직접 보고자 하는 역사 및 건축 애호가, 그리고 조용한 성찰의 공간을 찾는 이들이 주로 방문한다. 특히 1762년에 제작된 정교한 캐럽 나무 조각 문은 많은 이들의 감탄을 자아내는 핵심 볼거리이다.
방문객들은 수도원의 아름다운 외관과 국가 역사 기념물로 지정된 건축물의 가치를 감상할 수 있으며, 봉쇄 수도원인 카르멜회 수녀들이 만든 수공예품이나 종교적 기념품을 독특한 방식으로 구매하는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다.
봉쇄 수도원이므로 내부 관람이 극히 제한적이며, 대부분 건물 외부와 입구 홀 정도만 볼 수 있다는 점이 아쉬움으로 남을 수 있다.
핵심 평가
🏷️여행지 특성
주요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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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가로보 나무 정문 (Puerta de Algarrobo)
1762년 원주민 장인이 수공예로 조각한 캐럽(알가로보) 나무로 만들어진 정문은 산 베르나르도 수도원의 가장 상징적인 특징이다. 정교하고 아름다운 조각은 아르헨티나 식민지 시대 예술의 진수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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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 시대 건축 양식 (Arquitectura Colonial)
16세기 말~17세기 초에 지어진 살타에서 가장 오래된 종교 건축물 중 하나로, 스페인 식민지 시대의 건축 양식을 잘 보존하고 있다. 1941년 국가 역사 기념물로 지정될 만큼 역사적 가치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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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쇄 수녀원 체험 (Experiencia del Convento de Clausura)
상품별 가격 상이카르멜회 봉쇄 수녀들이 거주하는 곳으로, 방문객은 수녀들과 직접 대면하지 않고 회전식 나무 창구를 통해 그들이 만든 수공예품, 종교 용품, 간단한 먹거리 등을 구매할 수 있다. 이는 봉쇄 수도원의 독특한 운영 방식을 엿볼 수 있는 경험이다.
추천 포토 스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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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가로보 나무 정문 앞
수도원의 상징인 정교하게 조각된 1762년산 캐럽 나무 문을 배경으로 사진을 남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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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원 정면 전체 모습
카세로스 거리에서 수도원의 아름다운 식민지 시대 건축 양식 전체를 담아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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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원과 산 베르나르도 언덕 배경
수도원 건물과 그 뒤로 보이는 산 베르나르도 언덕을 함께 프레임에 넣어 촬영할 수 있다.
방문 팁
예배당 내부는 이른 아침 미사 시간에만 잠시 개방될 수 있다는 얘기가 있으니, 내부를 보고 싶다면 아침 일찍 방문하는 것을 고려해볼 수 있다.
수녀들이 만든 기념품이나 먹거리는 입구 홀의 회전식 나무 창구를 통해 구매할 수 있으며, 이 때 현금만 사용 가능하다.
봉쇄 수도원이므로 일반 방문객의 내부 출입은 엄격히 제한된다. 주로 건물 외부와 정문, 그리고 기념품을 구매할 수 있는 입구 홀 정도만 볼 수 있다.
1762년에 제작된 정교한 알가로보 나무 문은 수도원의 상징과도 같으니 놓치지 말고 감상하는 것이 좋다.
접근 방법
🚶 도보
- 살타 시내 중심부에 위치하여 주요 관광지에서 도보로 접근이 용이하다.
- 7월 9일 광장(Plaza 9 de Julio)에서 카세로스(Caseros) 거리를 따라 동쪽으로 약 4블록 거리에 있다.
- 산 마르틴 공원(Parque San Martín) 및 산 베르나르도 언덕(Cerro San Bernardo) 케이블카 탑승장과도 가깝다.
🚌 대중교통 및 택시
- 살타 시내를 운행하는 버스를 이용하여 인근에서 하차 후 도보로 이동할 수 있다.
- 택시를 이용하면 편리하게 도착할 수 있으며, 살타 시내 어디에서든 쉽게 이용 가능하다.
역사적 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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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 명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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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담
원래 이곳은 도시 초창기 수호성인인 성 베르나르도를 기리는 작은 예배당(에르미타)이었으며, 이후 병원으로도 사용되었다고 한다.
수도원의 상징인 아름다운 알가로보 나무 문은 원래 베르나르도 데 라 카마라(Bernardo de la Cámara) 가문의 소유였으나, 1847년에 현재 위치로 옮겨졌다는 얘기가 있다.
이곳에 거주하는 카르멜회 수녀들은 봉쇄수녀회 소속으로, 외부 세계와의 접촉을 최소화하며 생활한다. 물품 판매 시에도 회전식 창구를 이용해 직접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1762년에 원주민들이 손으로 직접 조각한 이 문은 아르헨티나에서 가장 순수한 형태의 동종 예술품으로 평가받기도 한다.
1692년 대지진으로 인해 건물이 소실되었다가 1726년에야 다시 사용 가능하게 되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